간에 전이되었다는 암이 사라졌어요. (김영주 스콜라스티카)

  • 위암 수술 후 3년 만에 간암으로 전이.
  • 1999년 4월, 2개월 시한부 선고받고 남양성모성지를 순례하며 미사와 묵주기도 봉헌 
    (너무 힘들어 사제 집무실에 누워 쉬다가) 안수받고 귀가
  • 남양성모성지로 기도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냄 (월보 99호에 게재)
    → 성지에서 순례자들과 함께 이 자매를 위해 기도
  • 1999년 성모승천대축일 (8월 15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남양성모성지 순례
  • 감사와 치유 과정을 기록한 편지를 보냄. (묵주의 9일 기도로 치유)
  • 10년 이상 건강하게 교회 내·외에서 봉사활동
    (2011년 남양성모성지 봉헌 20주년 문화 행사 섭외 담당 등)

 

※ 다음 두 통의 편지는 김영주 스콜라스티카 자매가 직접 작성해서 보내온 것이다.

첫 번째 편지: 엄마 없이 자랄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오랜만에 집에서 겨울옷을 정리하다가 신부님이 쓰신 책이 눈에 띠어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암이 재발하여 며칠 전 미사 후에 기도해 주셨지요.

신부님, 요새는 기도도 잘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정신이 수만 갈래로 갈라져 제각기 뛰어다니며 저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편지는 사실 제가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라 생각하고 쓰는 것입니다.

신부님, 저는 성당 뒤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저희 집안에서 첫 번째로 세례 성사를 받았습니다. 늘 가방 들고 성당에 가서 제대까지 가서 기도하고 학교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대학교 3학년 때 또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임종 직전 대세를 받았고 아버지는 사망하기 일주일 전에 세례 성사를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부모 없이 결혼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시댁에서는 절에 다니며 미신을 심하게 믿었습니다.

점쟁이들이 궁합이 안 좋다고 했다며 혼사를 자꾸 밀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가 예수님을 굳게 믿는데 너희가 나를 어쩌랴?

하느님께서 날 그냥 두시랴? 하면서 점쟁이들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제가 고집을 피워 마침내 결혼을 했습니다. 시부모님들은 잘 대해 주셨지만 제 신앙을 밝힐 수가 없었고, 신앙생활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를 낳고 2개월쯤 지나 잠을 자는데 벽에 걸려있던 거울이 갑자기 아이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누워있어야 할 아이가 요 위쪽 가장자리까지 올라가 있어 아무 사고도 나지 않았습니다. 순간적으로 피에타 상 같은 성상이 떠오르며 ‘성모님이 옮겨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냉담 중이었고 성모님에 대한 신심도 없었는데도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이런 아이를 주셔서 감사하고 주님 나라에 일꾼으로 쓰이게 해달라고 봉헌기도를 했습니다. 사제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래서 유치원도 데레사 유치원에 보내고 추첨을 통해 들어가는 가톨릭계 초등학교도 간절히 기도하여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추첨일 전날 머리에 하얀 베일을 쓰신 초로의 수녀님이 아이 원서를 써주시자 이곳에서 가장 높으신 수녀님이라고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영성체 후 입안이 촉촉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그분도 성모님이셨다고 믿습니다.

어느 날 개신교에 다니는 제 친구가 성령기도회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을 해서 저는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성령 세미나를 받았는데 안수하는 날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성모님 도와주세요!” 소리를 계속 질렀습니다.

한참을 그리하다가 제 혀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도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이 저를 도와주셨으며 성령을 보내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후 우연히 정기 검사 도중 위에 암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수술을 했고 초기라 아무데도 전이가 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늘 조심한다고 했는데 이번에 간에 암이 전이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난번 수술 때는 수술대 위에서 마취 직전에 날아다니는 불꽃을 보았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저를 고쳐주신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틀림없이 저를 살리신 이유가 있으실 거라 믿으면서 열심히 살고자 했습니다.

무엇이든 성당에 관련된 일은 “예!”하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수술도 못한다고 합니다.

암은 재발하면 죽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신부님, 이 일로 인해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이제껏 저를 사랑하면서도 제 신앙을 비웃던 남편이 제가 수술한 후에는 제 신앙을 인정했고 지금은 울며 기도합니다. 하느님께 간다고, 할 줄 모르는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며 회사에 갈 때나 잘 때나 항상 묵주를 품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기도하고 제가 성서를 읽으면 같이 읽습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매달린다’고 했다가 ‘조건 달고 기도하면 안 되지?’ 하고 묻기도 합니다.

신부님, 저는 친정 없이 시집왔어도 제 친정은 천국이라고, 아버지는 야훼이시고 어머니는 성모님이며 오빠는 예수님이시고 성인 성녀들이 제 형제 자매라고 늘 웃으며 이야기하고 의지했습니다. “엄마, 엄마”하고 기도했고, “오빠, 오빠”하고 기도했습니다.

늘 저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의 태에서 나온 첫 소생이라 당연히 야훼 성부께 드려야 된다고 생각하며 주위에서 “아들 하난데?” 해도 저는 전혀 아쉽지 않았습니다.

성부께서 사제로 쓰시건 꽃동네 기사로 쓰시건 하다못해 개신교 일꾼으로 쓰시더라도 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 애를 주신 분도 성부이시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로 ‘그동안 이렇게 봉헌한 것이 말뿐인 봉헌이었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온전히 봉헌했다면 이렇게 자식을 보며 가슴 아파하지 않았을 텐데...

신부님, 어찌 어미가 자식을 두고 가면서 가슴 아프지 않겠습니까?

신부님, 신부님은 저보다 성모 어머니와 더 가까이 계신 분이시며 늘 성체를 대하시니 감히 엎드려 이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하고 청합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오려는 제 남편이 실망하여 주저앉지 않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천년이 하루 같으신 분이시니 어린 아들과 주님께서 오랫동안 기다리셨던 남편의 회개를 보시고서라도 이 부족한 저를 살려 주시라고 기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개밥그릇만도 못한 비천한 그릇이오나 당신의 사랑으로 지금껏 커왔으니 시간을 더 주시라고 기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제 아들이 저처럼 엄마 없이 자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제 제가 가면 친척들이 제 아이를 키우며 “네 엄마가 성당에 다녀서 무슨 복이 있었냐?” 라고 말하고 남편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크신 주님의 섭리가 있으실 것임을 믿습니다만, 작은 인간의 걱정이 비수가 되어 저를 찌르며 조롱합니다. 저 스스로도 ‘네가 믿어왔던 천상의 가족들은 어디 있느냐? 너는 환상을 좇은 게 아니냐?’ 하는 유혹도 듭니다.

신부님, 저는 앞으로 어찌 될지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감사히 살고자 합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아이와 남편 곁에서 살고 있으니 저는 늘 기도를 응답받는 은총 속에 있습니다.

신부님, 긴 편지에 소중한 시간 뺏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신부님이 기도해 주시면 예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꼭 잊지 말고 기도해 주세요. 꼭이요. 저도 신부님 위해 날마다 기도할게요.

 

1999년 4월 말, 편지를 받고 이 가정과 자매의 치유를 위해 남양성모성지에서 순례자들과 함께 5월 한 달간 기도함.

그 후 아무런 소식이 없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1999년 8월 15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와 치유 소식을 전함

두 번째 편지 : 암의 흔적이 안 보인대요!

신부님,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덕분으로 저는 지금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9년 봄 다시 간에 암이 전이되었다는 진단이 내려진 그때 신부님에게 편지를 드릴 때에는 참으로 힘들었을 때였습니다. 가는 병원마다, 만나는 의사마다 더욱 절망적인 소리를 제게 들려주었을 뿐이었고 그분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조용히 여생을 정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과도 같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약도 제게는 소용이 없다고 했으며 세상의 그 누구도 저를 살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때야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낮은 이가 되었다는 제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도 제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조차도 얼마나 흔들리기 쉽고 약한 것인지 그동안 바친 기도 역시 얼마나 이기적이며 편협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절망의 끝까지 끌려갔다고 느껴졌던 그때에 제 입은 다물어졌고 아무런 기도도, 아무런 말씀도 주님께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제 남편은 제가 삶의 의욕을 포기한 줄 알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저 묵주를 손에 들고 안절부절못하며 걱정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기도도 할 줄 모르면서도 그냥 묵주를 손에 감고 회사에 가고 잠을 자곤 했습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저는 제가 죽기 전에 남편에게 기도를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남편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함께 성모님에게 묵주기도를 드리자고 권했고 그날부터 54일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기도하니 어린 아들도 옆에서 그 긴 기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울며 살려달라고 기도했지만 이렇게 가족이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게 된 후부터는 그저 텅 빈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한 알 한 알 묵주 알을 잡으며 정해진 기도를 하며 평화로웠습니다.

“예수님, 성모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당신께 기도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묵주기도를 합니다.”

이 말씀밖에는 더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집안의 가까운 어른으로부터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자는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세 곳의 종합병원에 가 보았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른들이 자꾸 권하시니 마지못해 동네 병원에 가서 다시 컴퓨터 CT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너무 이상하다고 하며 초음파 검사를 세밀히 해 보았지만 어느 곳에도 암의 흔적이 안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외의 결과에 저는 그저 ‘작은 동네 병원이라 못 찾는 것이겠지’하고는 돌아오면서도 담담했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과 여느 때처럼 묵주기도를 드리려고 기도 책을 펴는데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이 54일 기도를 마치는 날이구나.”

그제야 저희는 성모님이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모님은 제 남편이 예수님을 믿기로 약속하며 난생 처음 드린 54일 묵주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며 ‘어떻게 날짜를 맞추려고 한 것도 아닌데 이럴 수가 있을까?’ 하고 의아해했습니다.

그 후 재발했다고 최초로 진단한 종합병원에서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고 3개월 후 받은 재검사에서도 같은 결과였습니다.

현재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겪은 그동안의 일들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이 글이 한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대희년을 시작하는 이 시기에 크신 성모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총을 전함으로써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성모님께 영광을 드리고 감사하고자 함이고, 저같이 고통받고 있는 많은 분들이 묵주기도를 통해 크신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저는 제가 남들보다 잘나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며 가장 비천한 자이며 가장 교만한 자였고 가장 낮은 자입니다.

그러함에도 저를 버리지 않고, 잊지 않고 사랑해 주신 성모님의 은혜로 주님의 큰 은총을 받게 된 것임을 믿습니다.

큰 고통 중에 계신 분들을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

어떤 위로조차 할 수 없는 절망 속에 계신 분들이라면 묵주기도를 통해 성모님에게 의탁할 것을 권합니다. 그 길이 제가 받은 유일한 은총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이상각 신부님과 성모성지의 여러 회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늘 환자를 위해 기도하시는 신부님의 사랑을 통해 많은 분들이 치유되기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