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채플

“나에게 영적인 것은 일상적인 삶을 벗어날 때를 의미합니다. 스스로가 더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고 마음이 더 열리고, 평화로워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죠. 아마 특별한 묵상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 건축가 페터 춤토어
 

자비로우신 예수님께 바치는 숲속의 경당

남양성모성지는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는 대성당과 함께 자비로우신 예수님께 바치는 작은 경당을 세우고자 했다. 성지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이들에게 치유의 은총을 건네는 묵상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한 계획이다. 이 뜻을 온전히 공간으로 구현하기 위해 남양성모성지는 ‘건축가들의 건축가’라 불리는 스위스의 거장 페터 춤토어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그는 침묵과 고독 속에서 다듬어진 듯한 고요한 공간, 눈에 띄기보다 기본에 충실하며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남기는 장소를 만들어온 건축가이다. 그의 건축이라면 남양성모성지를 찾는 이들에게도 예수님의 자비와 위로를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페터 춤토어는 세계적인 건축가이지만 설계를 쉽게 승낙하지 않는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지역의 재료와 풍경에 기반한 건축을 펼쳐온 그는 이름을 내세우거나 상업적인 건축을 거절하고 자신만의 길을 고집해온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이 스위스와 독일 등 유럽에 주로 자리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치유와 위로를 전하는 건축에 대한 이상각 신부의 의지는 페터 춤토어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는 아시아 최초로 남양성모성지에 경당을 설계하기로 했다.


2014년, 페터 춤토어가 남양성모성지를 직접 찾았을 때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미 여러 건물이 들어선 성지의 풍경은 그가 상상했던 고요한 경당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다시 부지를 찾은 그는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또 하나의 성당이 아니라 티 하우스를 지어보자는 것이었다. 

 

그가 떠올린 것은 동양의 다도였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차를 마시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제안은 종교적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치유와 평화, 조용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에 대한 사유에 가까웠다. 남양성모성지와 천주교 수원교구 역시 이 방향이 성지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고, 이 시대에 필요한 영적 공간의 새로운 형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기꺼이 응답했다. 그렇게 경당으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티 채플’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었다.
 

단순함이 주는 깊이

페터 춤토어는 숲에서 말없이 머물며 그 장소가 고독을 허락하는지,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양성모성지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인 기도하는 숲에서 일상의 소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자연의 숨결에 가장 가까운 자리를 선택했다.
티 채플은 단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84개의 수직 나무 기둥, 그 위를 가로지르는 수평의 목재,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작은 금속 핀이다. 또한 건축가는 설계 초기부터 이 공간을 ‘노 에너지 하우스’로 구상했다. 전기도, 인공조명도, 어떤 기계 설비도 들이지 않는다. 이는 단지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에 대한 질문이자 제안에 가깝다. 복잡함으로 대응해온 삶의 구조에서 벗어나 가장 단순한 형태와 감각으로 돌아가려는 시도이다. 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은 건축이 아니라 빛과 바람, 그리고 머무는 사람의 마음이 되기를 바랐다.

묵상의 공간을 함께 지어가는 일

티 채플은 작고 소박하며 조용하지만 극도의 친밀감을 허락하는 장소로 설계되었다. 2014년 첫 발을 디딘 이후 오랜 기획과 설계를 거쳐 이제 실현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완공되면 티 채플은 페터 춤토어의 아시아 최초 건축물이 될 것이다.
이곳은 단 한 사람의 뜻이나 한 건축가의 손끝만으로 완성되는 공간이 아니다. 치유를 바라는 마음, 고요를 찾는 삶의 태도, 위로를 나누고자 하는 염원이 모여 영성이 깃든 장소를 빚어가고 있다. 신자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열린 티 채플이 종교를 넘어 상처받은 이들을 포용하고, 특별한 묵상의 시간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EB 04

페터 춤토어
2009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페터 춤토어는 장소성과 감각의 깊이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알프스 산맥 중턱에 자리한 성 베네딕트 교회를 비롯해 브러더 클라우스 필드 예배당, 발스 온천장, 콜룸바 미술관 등에서 재료와 빛, 침묵이 어우러진 고유한 건축 언어를 구축해왔다. 남양성모성지의 티 채플은 아시아에서의 첫 설계작으로, 종교성과 일상성, 자연과 존재를 다시 사유하게 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2012. 11.

페터 춤토어 스튜디오 첫 방문

2014. 2. 

프로젝트 1단계 디자인 작업 승낙

2014. 8. 

페터 춤토어 남양성모성지 방문

2015. 6. 

아틀리에 춤토어의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첫 번째 모형)

2016. 4. 

남양성모성지 2차 방문

2017. 5. 

남양성모성지 3차 방문, 두 번째 프레젠테이션(대지 변경)

2022. 7. 

페터 춤토어 스튜디오 설계안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