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 건축가 마리오 보타
2011년, 남양성모성지는 성지 설립 20주년을 맞아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 봉헌 계획을 세웠다. 허허벌판에서 시작한 성지는 10여 년 넘게 작은 조립식 경당에서 순례자들을 맞아왔다. 순례자들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모두가 편안히 머물며 기도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소망이 커졌다. 자연의 빛과 소리가 몸과 마음을 감싸는, 온전히 기도에 잠길 수 있는 대성당을 꿈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신자와 후원자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빛의 건축가’이자 수많은 성당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에게 설계를 의뢰했고, 보타 역시 기꺼이 응답했다. 성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고유한 분위기를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설계안을 열두 차례나 다듬으며 대성당을 설계했다. 3만여 신자와 후원자들이 기도와 마음을 모아 봉헌해 준 정성이 대성당의 초석부터 마감석까지 하나하나에 깃들었다. 그렇게 쌓아 올린 시간과 정성의 결실로,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2020년 11월 신앙과 헌신,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치유의 성소로 첫 미사 봉헌을 시작했다.


성지의 길이 모이는 곳
멀리 두 개의 탑으로 순례자를 이끄는 대성당은 성지 안쪽 골짜기를 감싸 안은 듯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리오 보타는 처음 남양성모성지를 방문했을 때 오랜 시간 다져진 순례의 흐름을 읽어내고 이상각 신부가 가꾸어온 묵주기도길에 주목했다. 묵주기도길과 작은 기도처들, 그리고 땅에 새겨진 수많은 기도의 흔적을 하나로 모아 이를 완성하고자 했다. 그리고 은총의 빛처럼 퍼져 나갈 수 있는 그 중심에 대성당을 놓았다. 정면에 솟은 두 개의 탑은 등대처럼 성지의 중심을 지키고, 그 뒤로 이어지는 본당은 대지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이는 단순한 건축적 구성을 넘어 성지의 시간과 순례자의 마음이 도달하는 거룩한 중심을 이룬다.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이 시대의 종교건축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빠르게 소비하고 쉽게 망각되는 시대, 삶은 머무름보다 흘러감에 가까워졌고 침묵은 낯선 감각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마음을 붙들고 감각을 일깨우는 ‘내면의 성소’가 절실하다.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종교건축을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숨을 고르는 안식처이자, 홀로이면서도 함께인 기도 공동체의 만남터”라고 정의한다.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그 정의를 온전히 품은 공간이며, 그 중심에는 ‘빛’이 있다.
빛이 머무는 집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정면의 50m 높이 두 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제대 위로 이끌고, 목재 루버로 마감된 천창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광을 공간 가득 담아내고 있다. 한여름의 강렬한 햇살도, 겨울 오후의 부드러운 빛도 이곳에서는 기도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상각 신부는 마리오 보타와의 첫 만남부터 대성당에 ‘빛’을 가장 중요하게 담고 싶다고 전했다. 빛은 단순한 밝음을 넘어, 위로와 평안을 전하는 메신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대로 이곳은 오늘도 하늘의 빛으로 가득 차 조용히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 안고 있다.

사진 김규동
공간이 만드는 소리
또 하나 깊이 고민한 것은 바로 ‘소리’였다. 이렇게 큰 성당을 짓는 일은 단지 미사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공간, 특히 지역 사회에 열려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고,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적 울림이 작동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대성당에서는 건축가와 음향설계사가 힘을 모아 좋은 음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마름모꼴 평면, 벽의 각도, 천장의 곡률까지 공간의 생김새부터 사용된 재료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정밀하게 선택하고 조율했다.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는 마이크 없이도 신부의 강론과 연주자의 음악, 신자들의 기도 소리가 맑고 또렷하게 울린다. 특히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되면 수천 개의 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이 성당을 감싸며 마음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설계 초기부터 악기의 규모와 위치를 고려해 공간 자체를 조율한 덕분이며, 아름다운 소리 구현에 신심을 다한 성과이다. 그 결과 대성당은 미사뿐 아니라 연주와 합창이 가능한 문화 공간으로서도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도로 빚어진 위안의 장소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정성이 모여 탄생한 신앙의 결실이다. 마리오 보타 역시 “이 대성당은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여 이루어진, 제게 주어진 가장 크고 귀한 선물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오늘도 남양성모성지를 찾은 이들은 대성당에서 조용히 머물며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있다. 따뜻한 울림 속에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다시 걸어갈 용기를 얻는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가 신자가 아니더라도 빛과 소리, 침묵과 여백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열리고 내면 깊은 곳에서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위로를 느끼고 성모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
사진 김용관

건축가 마리오 보타
스위스 티치노에서 태어난 마리오 보타는 루가노 지역을 중심으로 건축 활동을 이어온 세계적인 건축가이다. 그의 첫 종교 건축인 프랑스 에브리 대성당을 시작으로, 수많은 가톨릭 성당을 설계하며 자신만의 종교 공간 해석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는 남양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비롯해 교보타워, 삼성미술관 리움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1. 6. 7. 마리오 보타에게 첫 메일 |
2011. 8. 21. 마리오 보타, 남양성모성지 첫 방문 |
2011. 10. 16. 공항 미팅, 첫 번째 설계안 브리핑 |
2014. 9. 4. ~ 2015. 1. 10. 계획설계 및 중간설계 완료 |
2015 4. 2. ~ 2016. 4. 1. 건축 허가 및 실시설계 완료 |
2016. 5. 28. ~ 2017. 5. 13. 기공식 및 착공 |
2018. 10. 12. 줄리아노 반지 페사로 프레젠테이션 |
2021. 7. 20 ~ 8. 18. 작품 설치 완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