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 조경가 정영선
남양성모성지는 길게 이어진 숲길과 정갈한 풍경이 순례자와 방문자들을 반긴다. 짙은 녹음의 숲을 따라 난 묵주기도의 길은 남양성모성지를 대표한다. 이 기도의 숲은 자연스레 몸을 낮추게 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40여 년 동안 기도로 쌓아올린 시간의 풍경이기에 더욱 그렇다. 1983년 순교지를 성지로 조성하던 때부터 신부와 신자들이 함께 하나둘 정성을 모아 일군 이 숲은 그 자체로 남양성모성지의 정신을 보여준다.
남양성모성지는 성지 전체가 따뜻한 위로와 치유를 건네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대성당 봉헌을 계기로 성지의 순례 동선과 자연 환경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그 여정을 함께한 이는 조경가 정영선이다. 그는 성지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바라보았다. 도심과 만나는 진입부, 외부 행사가 열리는 중앙광장, 그리고 깊은 골짜기 안에 자리한 대성당.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이 세 공간을 어떻게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할 것인가. 조경가는 이를 성지 조경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받아들였다. 정영선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조경의 원칙은 원지형, 즉 산과 골짜기, 경사를 존중하고 복원하는 것, 그리고 순교의 장이자 기도의 장소인 이 땅이 지닌 특성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지의 풍경은 그렇게 ‘조성’이 아니라 ‘응답’의 방식으로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이에 입구에서 대성당까지 이어지는 약 400미터의 긴 길은 기도의 걸음을 위한 숲길이 되었다. 길의 시작에서는 부드럽게 열리는 환대의 풍경이 맞이하고, 점차 고요해지는 공간의 흐름은 기도자의 마음이 안으로 향하도록 이끈다. 참배로는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길 한가운데는 일부러 풀밭을 비워 성당을 우러러보며 걷는 발걸음에 여유와 숨을 불어넣는다. 묵주기도 길의 시작점에 있는 십자가(그리스도)상 주변은 상록수로 둘러싸 바깥의 시선을 잠시 멈추게 하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감각의 경계를 정돈한다.
남양성모성지 조경은 늘 그래왔듯 ‘새롭게 만드는 일’이라기보다 이미 살아 있는 시간을 이어주는 일에 가까웠다. 신부와 신자들의 손으로 하나하나 가꿔온 수목과 정원, 돌의자, 묵주기도의 길은 가능한 한 그대로 보존되었고, 옮겨야 하는 나무들에는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해 제2의 생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조경은 여백과 리듬을 통해 말을 건다. 길을 따라 걸으며 시선을 들고 멈춰 서고 숨을 고르는 그 순간들 속에 기도의 풍경과 맞물리는 시간이 놓여 있다.
사진 김규동

조경가 정영선
정영선은 시간의 흔적을 소중히 여기며, 기억과 장소의 복원에 힘써온 한국 조경의 대표적인 조경가이다. 대한민국의 1세대 조경가이자 조경설계사무소 서안의 대표로서,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경춘선 숲길,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한국 조경의 굵직한 행보를 만들어 온 조경가 정영선은 202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세계조경가협회가 수여하는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양성모성지에서는 성지 곳곳에 조성된 조경을 빠짐없이 확인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걷고 머물고 기도하는지를 세심히 관찰하며, 자연과 행위가 조화롭게 이어지도록 제안하고 있다.
2018. 4. 남양성모성지 현장 방문 |
2019. 4. 마리오 보타와 미팅, 대성당 주변 조경 기본 구상 |
2019. 6. 대성당 측면·후면부 조경 공사 착공 |
2020. 12. 대성당 측면·후면부 조경 공사 완료 |
2022. 3. 대성당 전면부 조경 공사 착공 |
2023. 7. 대성당 전면부 조경 공사 완공 |